2008/05/03 14:04
가정의 소중함
칼럼 / 향로 선 중 관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정과 어느 한 공동체에 속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결코 홀로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이든 어머니 품 같은 안식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안식처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가정입니다.
가정은 피(血)와 성(性)으로 얽혀진 인간의 원초적 집단이요 기본적 공동체입니다. 성으로 얽힌 부부의 애정(愛情), 그리고 그 애정의 산물(産物)로 태어난 자녀와 부모간의 사랑, 그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서로 이해하고 협동하며 희생하는 인생드라마가 꾸밈없이 연출되는 곳입니다.
가정은 이해타산의 각박함이 있어서도 안될 것이며, 상호 경쟁의 장소도 아니며,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갈등의 장소는 더 더욱 아닙니다. 내 것 네 것이 없는 세계요, 나는 잘나고 너는 못났다는 식의 우격다짐이 없는 세계입니다.
이처럼 가정은 우리에게 포근한 행복의 보금자리임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성장과 과학문명은 어머니 젖가슴 같은 포근한 가정을 서서히 앗아가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지능은 점점 문명을 발달시켰고, 그 문명의 찬란한 꽃봉오리는 거대한 덩치로 우리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로랜스 하워드]는 '도시의 등장'이라고 했습니다.
화려한 도시의 등장은 사람들을 자꾸만 가정에서 도시로 내어쫓았습니다. 현대인들은 도시를 사모하여 집과 가정과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도시로 찾아들게 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문명을 즐기는 인간들의 당연한 순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삶이 종합되는 터전으로서의 가정이 없어져 가는 비극의 싹이 트게 된 것입니다.
도시는 화려함 뒤에 우리에게 심각한 경쟁을 강요합니다. 살기 위해서는 수많은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쳐야 하는 극단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경쟁에서 지면 그는 낙오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도시는 결코 더 이상 화려함도 포근함도 아니었습니다. 도시는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었고 고달프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남편은 집에 돌아올 때 돈봉투만 갖다주는 물주로 변했으며, 아내는 남편과 자녀들이 나가버린 적막한 집안에만 홀로 있을 수 없어 동창회니 계모임이니 하며 밖으로 떠돌거나, 아니면 아예 Cyber 라는 또 다른 세계에 빠져들고 맙니다. 자녀들은 극심한 사회경쟁에 실패할 수 없는 후보자들로서 진학과 취직의 노예들이 되어 끌려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점점 우리의 가정들은 사랑과 믿음과 용서의 덕목이 사라지고 피차 자기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에 따라 함께 합숙하는 기숙사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도심의 바쁜 일과 때문에 풀이 죽은 아버지는 밤늦게 들어와 잠자는 자식들의 얼굴을 한 번 훔쳐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고, 아침 일찍 서둘러 출근길에 올라야 하는 아버지는 역시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자식들의 얼굴을 보고 출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가족의 얼굴을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들어와 잠만 자고 나가는 곳이 어찌 가정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따라서 가정은 오히려 떠나고 싶어하는 공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마음껏 사랑을 호흡하고 함께 창조하는 줄기찬 생명력의 공동체가 파괴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높은 이혼율과 청소년 가출로 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 현실이 그것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가정이 인성(人性)과 신앙교육의 장(場)이요 하나님의 은혜는 가족공동체 전체를 향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신6:6-9, 엡6:4-15). 따라서 우리의 가정이 바로 예배장소이고,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작은 교회이며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즉 가정의 원리와 교회의 원리는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서 신앙의 위기를 맞는다면 다른 모든 면에서 실패를 가져옵니다. 철두철미한 신앙교육만이 거대한 도시의 위력을 물리치고 건전한 가정을 지키는 길입니다.
우리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정교회를 회복하고 신앙의 위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등한시하고 세상일에만 매달려 살다가 모든 것을 잃기 전에 서둘러 신앙의 길로 돌아 와야 합니다.
남편은 자기 집안의 미래와 정신적 신앙적 유산까지도 책임지는 주역이 되어야 하고, 아내는 치닥거리로만 끝나는 식구들의 종이 아니라 사랑과 믿음으로 가정의 분위기를 창조해 가는 새로운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은 무조건적은 반항과 이기심으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보다는 부모의 사랑과 신앙의 유산을 감사할 줄 아는 한 인격체로서, 자기의 인생을 부모에게서 배우며 함께 설계해 나가는 슬기의 주역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으며
가정은 피(血)와 성(性)으로 얽혀진 인간의 원초적 집단이요 기본적 공동체입니다. 성으로 얽힌 부부의 애정(愛情), 그리고 그 애정의 산물(産物)로 태어난 자녀와 부모간의 사랑, 그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서로 이해하고 협동하며 희생하는 인생드라마가 꾸밈없이 연출되는 곳입니다.
가정은 이해타산의 각박함이 있어서도 안될 것이며, 상호 경쟁의 장소도 아니며,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갈등의 장소는 더 더욱 아닙니다. 내 것 네 것이 없는 세계요, 나는 잘나고 너는 못났다는 식의 우격다짐이 없는 세계입니다.
이처럼 가정은 우리에게 포근한 행복의 보금자리임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성장과 과학문명은 어머니 젖가슴 같은 포근한 가정을 서서히 앗아가기 시작합니다.
화려한 도시의 등장은 사람들을 자꾸만 가정에서 도시로 내어쫓았습니다. 현대인들은 도시를 사모하여 집과 가정과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도시로 찾아들게 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문명을 즐기는 인간들의 당연한 순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삶이 종합되는 터전으로서의 가정이 없어져 가는 비극의 싹이 트게 된 것입니다.
도시는 화려함 뒤에 우리에게 심각한 경쟁을 강요합니다. 살기 위해서는 수많은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쳐야 하는 극단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경쟁에서 지면 그는 낙오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도시는 결코 더 이상 화려함도 포근함도 아니었습니다. 도시는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었고 고달프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남편은 집에 돌아올 때 돈봉투만 갖다주는 물주로 변했으며, 아내는 남편과 자녀들이 나가버린 적막한 집안에만 홀로 있을 수 없어 동창회니 계모임이니 하며 밖으로 떠돌거나, 아니면 아예 Cyber 라는 또 다른 세계에 빠져들고 맙니다. 자녀들은 극심한 사회경쟁에 실패할 수 없는 후보자들로서 진학과 취직의 노예들이 되어 끌려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점점 우리의 가정들은 사랑과 믿음과 용서의 덕목이 사라지고 피차 자기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에 따라 함께 합숙하는 기숙사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도심의 바쁜 일과 때문에 풀이 죽은 아버지는 밤늦게 들어와 잠자는 자식들의 얼굴을 한 번 훔쳐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고, 아침 일찍 서둘러 출근길에 올라야 하는 아버지는 역시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자식들의 얼굴을 보고 출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가족의 얼굴을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들어와 잠만 자고 나가는 곳이 어찌 가정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따라서 가정은 오히려 떠나고 싶어하는 공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마음껏 사랑을 호흡하고 함께 창조하는 줄기찬 생명력의 공동체가 파괴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높은 이혼율과 청소년 가출로 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 현실이 그것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서 신앙의 위기를 맞는다면 다른 모든 면에서 실패를 가져옵니다. 철두철미한 신앙교육만이 거대한 도시의 위력을 물리치고 건전한 가정을 지키는 길입니다.
우리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정교회를 회복하고 신앙의 위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등한시하고 세상일에만 매달려 살다가 모든 것을 잃기 전에 서둘러 신앙의 길로 돌아 와야 합니다.
남편은 자기 집안의 미래와 정신적 신앙적 유산까지도 책임지는 주역이 되어야 하고, 아내는 치닥거리로만 끝나는 식구들의 종이 아니라 사랑과 믿음으로 가정의 분위기를 창조해 가는 새로운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은 무조건적은 반항과 이기심으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보다는 부모의 사랑과 신앙의 유산을 감사할 줄 아는 한 인격체로서, 자기의 인생을 부모에게서 배우며 함께 설계해 나가는 슬기의 주역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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