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21 20:37
사랑과 소망을 이루는 산, 연인산(戀人山)
- 연인산 산행을 마치고
글 / 향로 선 중 관
산행일시 : 2009년 5월 19일(화)
산행날씨 : 맑고 화창함
산 행 지 : 경기 가평군(연인산, 해발 1068m)
산 행 길 : 연인산마을-백둔리들머리-소망능선-연인산정상-장수샘-장수봉-장수능선-백둔리
산 행 팀 : 푸른솔산악회 동인 10명
산행시간 : 5시간
계양 IC 부근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의 차량이 시원하게 뚫린 외곽순환고속도로와 경춘가도를 2시간 여 달려 연인산 백둔리 들머리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40분, 느지막한 출발임에도 한껏 여유를 부려보는 근교산행 일정이 여간 즐겁지 않았다.
연인산이란 이름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백둔리로 향하는 산자락에 오붓이 자리한 연인산 마을에는 이국적인 멋진 통나무팬션이 그림처럼 여기저기 숲속에 숨어있다. 러브호텔도 간간이 눈에 띄는 것으로 봐서 정말 이곳은 사랑의 소망을 안고 연인과 찾아오기 딱 좋은 산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랑을 이루고, 소망과 꿈을 키우고 갔을지 사뭇 궁금해지는 마음으로 산자락을 둘러보는데 차(車)는 어느새 임도(林道) 깊숙이 들어와 길가 허름한 가옥 빈터에 자리를 잡았다.
차에서 내려 임도를 따라 얼마를 걸으니 장수계곡에서 흘러내린 시원한 물줄기가 마음 속 묵은 때를 씻어 가는 듯 철철 거침없이 흐르고 있다. 물이 싣고 오는 것인지, 아니면 바람이 전해 주는 것인지, 화려했던 철쭉꽃은 지고 없는데 산울가 아카시아의 매혹적인 꽃향기가 그윽하게 전해진다.
그리움이기도 하고 추억의 한자락이기도 한 그 무엇인가가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른다. 해마다 아카시아 꽃이 휘날리는 이 맘 때 즈음엔 추억의 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산우(山友))들의 얼굴에도 푸른빛으로 물든 싱그러운 미소가 가득하다. 사람은 자연의 품에 들어서야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
제 아무리 풍요로운 물질과 사회적 명성에 묻혀 산다한들 그 속에선 메마르고 삭막한 마음뿐이다. 사람이 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의 품에 안겨야지만 포근하고 아늑함을 느끼는 것이다.
5월의 산과 하늘, 정말 맑고 깨끗하다. 5월의 산은 푸르다 못해 검푸른 빛을 물들이고 깨끗한 하늘 아래 곡선으로 누워있는 산 능선은 여인의 나신처럼 그 곡선이 곱고 아름답다.
우리는 백둔리 들머리에서 소망능선을 따라 산에 들었다. 길가의 돌짝밭 틈바구니에 며느리 주머니꽃이 곱게도 피어있다. 가느다란 가지에 조로록 매달린 꽃이 참 예쁘고 앙증맞다.
오붓한 오솔길인가 싶더니 이내 가파른 언덕길이 이어진다. 경사가 급하고 가파른데 하루 전 비가 온 탓인지 흙이 찰지고 촉촉해서 기분 좋게 올라갔다. 게다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땀도 별로 나지 않았다.
산에는 온통 참나무 숲이다. 몇 백 년은 묵었음직한 늙은 상수리나무와 갈참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에는 햇살 한 가닥 파고 들 틈이 없어 시원한 그늘 속을 걷는 맛이 참으로 별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 어둑한 숲길을 거닌다면 없던 용기도 생겨 마음껏 사랑을 고백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급한 능선길이지만 군데군데 산진달래 꽃이 소복히 땅에 떨어져 우리의 길을 밝히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꽃길이다. 이 길을 걷노라니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라는 시 구절이 떠오른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이하 생략)
“오시는 길 사뿐히 즈려 밟고 오소서” 라며 화동들이 꽃을 뿌려 놓은 듯 곳곳에 떨어진 꽃을 밟고 가는 걸음이 얼마나 가볍고 상쾌했던지 그 길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그 즐거움을 상상할 수 있을까?
참나무 그늘이 간간이 걷히는 능선에는 고개를 숙이고 꽃 이파리를 만세 하듯 들어 올린 얼레지 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피나물 양지꽃도 한창이고, 늦은 분홍철쭉도 드문드문 눈에 들어온다. 잎줄기 밑에서 수줍게 꽃을 피운 족두리꽃, 하얗게 조로롱 매달린 둥글레꽃도 보인다. 마음을 열고 숲을 보니 온통 꽃밭이다.
참나무 숲을 지나 꽃을 밟고 꽃을 보며 지나는 사이 연인산 정상에 다 달았다.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 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산 이름만큼이나 정겨웠다.
작은 공원의 뜰안 처럼 아늑한 산정에서 내려다 본 산자락엔 온통 철쭉 군락지로 형성된 넓은 구릉지가 어머니 가슴처럼 포근하게 펼쳐져 보인다. 철쭉은 이미 지고 군데군데 늦은 꽃무리 정도만 볼 수밖에 없지만 그 품에 내려가 안기고 싶은 충동이 일 만큼 평온해 보였다.
1068m 연인산을 에워싸고 물결치듯 흐르는 산굽이를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맑은 햇살에 녹음 짙은 산색이 눈부시다. 표지석을 가운데 두고 모두 모여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꿈꾸는 소망들이 몽땅 이루어지길, 우리 가슴에 흐르는 사랑이 저 산마루처럼 물결쳐 서로의 가슴에 다 다르기를 빌었다.
이제 산을 내려가야 한다. 생각 같아선 용추 계곡을 돌아 화악리까지 돌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산 아래 차를 이동할 수 없으니 출발지를 향해 최 근접지를 돌아갈 수밖에……
장수샘까지 오던 길을 되돌아가 장수능선으로 하산길을 택하였다. 본격적인 하산에 앞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장수샘에 둘러 앉아 싸온 보따리들을 풀었다. 푸짐하다.
정상 부근에서 인천에 산다는 어느 마음씨 좋은 산객으로부터 얻은 족발까지 보태지니 임금 부럽지 않을 성찬이 땅바닥에 차려졌다.
등산의 묘미는 산을 오르는데도 있지만 일행들과 나누는 우정에도 있다. 왁자지껄 떠들며 땅바닥에서 나누는 음식 맛 하며, 한 없이 이어지는 입담과 땀 냄새, 사람냄새 풍기는 거친 숨소리에서 사람 사는 재미를 느끼며 참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좁다란 잡목 길이 이어진다. 급격한 경사도, 그렇다고 평지도 아닌 완만한 등산로가 오솔길처럼 열려 있는데 두 사람도 걸을 수 없는 그 길을 연인끼리 앞서고 뒤서고 걸으며 밀고 댕기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더 없이 좋은 길이었다. 숲길 내내 산새들은 어찌 그리 아름답게 노래 부르는지……
산을 내려오는 길,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온종일 등산화에 옥죄어 있던 발의 피로가 금세 풀린다. 시원한 물 기운이 발을 타고 올라 머리까지 전해진다.
이렇게 맑은 마음이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내 몸에 흐르는 피가 저 물처럼 저렇게 깨끗했으면 좋겠다.
연인산은 경기도 제2의 고봉 명지산의 남녘 능선을 잇는 산으로 가평군 제1의 휴양지인 용추계곡 최상류에 자리하고 있다.
연인산은 우목봉과 월출산으로 불리어왔으나 가평군이 지명을 공모하여 1999년 3월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이란 뜻에서 이 산 이름을 연인산으로 바꾸었다 한다. 그리고 연인산 서남쪽의 906m 봉은 우정봉, 그 고개는 우정고개, 동남쪽의 879m 봉은 장수봉이라 이름 하였고, 또한 연인산에서 뻗은 각 능선에 우정, 연인, 장수, 청풍 소망 등의 이름도 붙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연인산은 가평군에서 사랑과 소망이라는 테마로 그 의미를 부여한 산이다. 기암괴석과 험산계곡의 면모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울창한 참나무 숲과 아기자기한 능선 길은 참으로 사랑과 우정을 쌓기에 더 없이 좋은 산이다.
철쭉꽃이 온 산을 물들일 때 다시 한 번 찾아오고픈 산,
사랑하는 사람끼리 손을 잡고 걷고 싶은 정겨운 산,
사랑과 소망을 이룬다는 그 산에 우리의 마음자리 한 자락씩 놓아두고 산을 내리는데 산비둘기 한 쌍이 구굴구굴 오래도록 정을 나눈다.
2009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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